이번에 다룰 전자블록 시리즈는 갓켄(学研) 체제의 정점이었던 ‘전자블록 EX 시리즈‘ 입니다. EX 시리즈는 전기·전자회로를 다루는 제품으로서의 컨셉이 완성된 제품군이었으며, 기존의 DR, SR, ST 시리즈가 가지고 있었던 약점을 보완하면서도 블록을 조립하는 것만으로 회로를 구성한다는 전자블록의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은 훌륭한 제품입니다.

전자블록 EX 시리즈 특징
EX 시리즈의 블록 색상은 ST의 투명 색상에서 반투명한 올리브(Olive) 색으로 변경되어 시인성이 좋아졌습니다. 변경된 색상은 PCB를 연상시키기도 해서 전자블록의 정체성에도 잘 맞아 이후 FX 시리즈에서도 사용됩니다. 부품 각인은 블랙 실크 인쇄에서 실버 은박 인쇄로 변경되어 고급스러운 느낌을 더한 것도 특징입니다. 색상은 훨씬 고급스러워졌지만 블록 자체의 사양은 ST 시리즈나 FX 시리즈와 동일한 18mm이기 때문에 서로 교차해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1. 또한 블록 스테이지의 고정 방식도 ST와 동일합니다.
전체적인 디자인은 갓켄측의 제안에 의해 당시에 유행하던 라디오 카세트 플레이어 형태의 세련된 캐비닛으로 변경되었고, 모든 블록이 캐비넷에 한 번에 수납 가능2하도록 블록의 개수와 종류도 정리되었습니다. 블랙 컬러 기반의 각진 디자인은 당시 초중학생 사이에서 큰 인기를 구가하게 됩니다.
시리즈의 라인업도 세세하게 설정되어 엔트리 제품인 EX-15부터 최상급 모델인 EX-181까지 예산에 따라 7종류의 제품이 준비되었습니다. 물론 상위 기종을 따로 구입할 필요 없이 추가 파츠만 구입하면 상위 기종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정책도 유지되었습니다.
EX 시리즈에서는 ST 시리즈에 이어 음성 출력용 앰프 유닛이 포함되었습니다. 1976년에 발매된 오리지널 제품은 ST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앰프를 본체에서 분리할 수 있었으며3, 전원과는 별도로 구성되었기에 앰프 유닛을 항상 연결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또한 앰프 회로가 트랜지스터 대신 IC로 구성되어 ST 시리즈에 비해 훨씬 더 컴팩트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기존 ST 시리즈에서는 바 안테나와 가변 콘덴서가 2×5 크기의 별도 블록4으로 구성되어 블록 스테이지에서 큰 부분을 항상 차지하고 있었으나, EX 시리즈에서는 안테나와 튜너가 스테이지 주변에 기본 내장되어 있고, CdS와 미터도 상단에 내장5되어 컴팩트하지만 풍부한 기능을 모두 담은 형태로 완성되었습니다.
또한 블록 스테이지가 기존의 5×6에서 8×6으로 크게 확장되어 회로 실험 개수도 100개6에서 191개7로 크게 늘어났고, 그 결과 조작성과 기능성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습니다. 블록의 사양 자체는 ST 시리즈에서 완성되었지만, 전자블록이라는 제품은 EX 시리즈에서 하나의 시스템으로 완성되었다고 이야기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 외에도 전원 구성이 상대적으로 구하기 쉬운 AA 형식의 건전지를 사용하도록 변경되었고, 전압도 6V 구성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당시 개발자가 독일인인 친구로부터 중요한 조언을 받아 EX 시리즈를 완성했다고 하며, 이를 기념하여 EX 시리즈의 제품과 유닛에 아이덴디티 색상으로서 노란색과 붉은색 스트라이프 무늬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EX-150 복각판
EX 시리즈를 비롯한 전자블록 시리즈는 1986년에 패미컴을 비롯한 콘솔 게임과 퍼스널 컴퓨터의 등장과 함께 생산이 종료됩니다. 그러나 당시의 추억을 되살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한국에서도 저 같이 카피 제품을 접한 분들이 그 느낌을 다시 느끼고 싶어 했습니다. 그 결과 갓켄에서 2001년에 복각 계획이 수립되었고, 단기를 낮추기 위해 여러 가지 절충을 통해 2002년 4월에 EX-150 복각판이 발매됩니다.

EX-150 복각판은 오리지널 버전 EX-150의 실험을 최대한 재현하기 위해 동일한 구성을 목표로 했으나, 이전에 사용되었던 전자 부품을 수배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다음과 같이 일부 사양이 변경되었습니다.
- 트랜지스터와 다이오드의 변경으로 라디오 감도가 다소 떨어집니다.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3m 길이의 안테나선이 추가되었습니다.
- 앰프가 탈착식에서 본체에 내장되도록 변경되었습니다.
- 블록의 금형을 새로 준비하면서, 블록의 크기가 0.2mm 가량 작아져 좀 더 부드러운 탈착이 가능해졌습니다.
- 기존 회로 중 5개는 정상 동작하지 않아 새로운 회로로 대체되었습니다.
확장 키트 광실험 60
오리지널 EX-150이 발매되던 당시에는 신디사이저 파츠를 추가하여 31개의 회로를 추가로 구성하거나 EX-FM 파츠를 추가하여 10개의 회로를 추가로 구성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EX-150이 복각되던 시점에는 신디사이저를 구성하는 IC를 구할 수 없어서 안타깝게도 EX-181은 복각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아쉬움을 달래주기 위해 기획된 것이 당시 새로 등장하여 널리 활용되기 시작한 부품들인 LED나 IC, 모터, 포토 트랜지스터 등을 이용해 빛을 활용한 실험을 할 수 있ㅈ는 확장 키트 광실험 60입니다.

이 제품은 확장 키트이기 때문에 회로를 구성하려면 반드시 전자블록 EX-150 복각판 또는 복각신장판을 준비해야 합니다. 블록의 각인은 빛을 활용한다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 골드 금박 인쇄를 사용하였습니다. 또한 음악 IC, IC-555 등이 추가되어 60개라는 꽤 많은 실험이 추가로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 제품을 추가하면 빛과 색상 그리고 소리를 활용하는 재미있는 실험이 가능하므로 구할 수 있다면 꼭 구해서 활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특히 광섬유(light fiber)를 활용하는 부분도 흥미롭습니다.
한정 제품들
EX-150이 복각되면서 다양한 형태의 한정 제품이 발매되기도 하였습니다.
갓켄 전자블록의 비밀 가이드북
EX150 복각판의 판매와 함께 단순 회로 구성에 그치지 않고 그 원리를 상세하게 이해할 수 있는 가이드북으로서 갓켄 전자블록의 비밀(学研電子ブロックのひみつ)가 함께 발매되었습니다. 당연하게도 지금은 절판되어 정가로는 구할 수 없지만, 일본어를 읽고 이해하실 수 있다면 중고로라도 구입해서 함께 읽어 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회로집에는 없는 새로운 회로도 몇 가지 추가되어 있으니까 말이지요.

특히 이 가이드북은 갓켄전자블록 입문세트 가이드북 포함 제품이나 갓켄 전자블록 한정스페셜팩 등에 함께 동봉되어 판매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가장 많이 판매된 것이 입문세트로 무려 15만부 이상이 판매되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초판인 제1쇄에서는 전자반딧불이 회로가 잘못되어 있으니 이 경우에는 공식 사이트에서 정정된 회로 배치도를 다운로드하여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갓켄전자블록 EX-150 신장판
이전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회로집 등을 가능한 한 수정하지 않은 예전 상태 그대로 발매했던 복각판과 달리 패키지를 일신하고 매뉴얼을 읽기 편하게 새로 디자인한 EX-150 신장판이 2009년에 발매되었습니다.

갓켄전자블록 DELUXE PACK 210
이외에도 EX-150 복각신장판과 광실험 60을 한데 묶은 갓켄전자블록 DELUXE PACK 210이 발매되기도 하였습니다.

전자블록 mini
전자블록을 대중화시킨 갓켄은 학습 도구를 설계·제조·판매하는 회사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관련 서적을 출판하는 출판사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어른의 과학 매거진 (大人の科学マガジン) 시리즈입니다. 어른의 과학 매거진은 비정기 간행물로서 EX-150이 복각된 2002년에 성공 여부를 가늠하지 못한 상태에서 전개된 기획이었으나 2003년 4월의 Vol. 1을 시작으로 작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2012년의 Vol. 33을 끝으로 볼륨은 따로 붙이지 않고 있으나 2024년에도 35mm 필름 카메라를 부록으로 제공하는 판본을 발매했을 정도로 1년에 두 세 권 가량 발매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어른의 과학 매거진은 잡지와 전자 제품을 제작할 수 있는 킷으로 구성된 부록이 함께 묶여 제공되는 형태를 갖추고 있는데, 예상대로 이 서적의 본체는 바로 이 부록입니다.

사실 전자블록 EX-150이 복각되어 15만대 이상이 판매될 정도로 인기를 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자블록이 복각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와중에 전자블록을 부록으로 제공하되 기존의 블록과 호환되는 형태로 제공되었으면 좋겠다는 피드백에 따라 어른의 과학 Vol.32로 발매된 것이 바로 이 전자블록 mini입니다.
이미 전자블록 mini가 탄생하기까지라는 글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전자블록 mini는 25개의 블록을 이용해 50개 이상의 회로를 구성하고 실험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제품입니다. 잡지의 부록인 만큼 가격대를 낮추기 위해 블록의 각인이 은박 인쇄에서 실크 인쇄로 바뀌고 가변 콘덴서와 트랜스포머가 빠지는 등 구성이 간략해지긴 했지만 블록을 구성하고 조립하는 것만으로 동작하는 회로를 구성할 수 있다는 느낌은 그대로 살리고 있습니다.
어른의 과학 매거진은 2010년대에 한국에서도 수입하여 판매된 바 있으나 지금은 제휴가 완료되어 수입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메루카리와 같은 중고 플랫폼을 잘 찾아본다면 여전히 몰래 보관해 왔던 신품을 구입할 수 있지만, 당연하게도 정가에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2배 가량의 프리미엄과 국제배송료가 추가되는 것은 감안해야 합니다.
마치며
어느 날 갑자기 예전의 만능킷트에 대한 추억이 떠오르면서 전자블록을 구하려 애썼던 것이 2012년이니 벌써 15년 전의 일입니다. 물론 만능키트를 사용해 보았던 것을 포함하면 거의 40년이라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만. 어찌됐든 다행히도 당시 구했던 제품들은 신품 상태였고, 지금 새로 구한 ST, FX로 세월의 흔적은 있지만 여전히 잘 동작하는 제품이기에 가끔 꺼내 실험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물론 30대나 그 이후 세대라면 이런 구닥다리 아날로그 제품보다는 PC를 이용한 게임이 더 익숙할 것입니다. 저도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 슈퍼 패미컴으로 캡틴 츠바사 III 황제의 도전(キャプテン翼III 皇帝の挑戦)을 즐긴 이래로 약 10년간 짬짬이 콘솔 게임을 즐겼으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손이 불편하다 보니 빠른 반응 속도를 필요로 하는 게임은 엄두도 내지 못했고 주로 즐긴 게임은 파이널 판타지나 드래곤 퀘스트 같은 정적인 일본식 롤플레잉 게임이다 보니 해당 장르가 크게 쇠퇴한 지금은 게임에는 그리 관심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8. 덕분에 비싼 GPU에도 관심이 없으니 좋은 건가 싶기도 합니다만. AI 관련 개발은 어차피 워크스테이션이나 클라우드로 돌리고 있으니 별개로 치고 말이지요.
어쨌든 게임이건 아날로그 전자 부품
- 단, 동일한 부품 ID와 각인을 가지고 있는 블록이라도 시리즈에 따라 사용된 부품이 다를 수 있습니다. ↩︎
- EX-FM 파츠를 추가하거나 EX-181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블록 개수가 늘어나 전부 수납할 수 없습니다. ↩︎
- EX-150 복각판에서는 단가를 낮추기 위해 앰프가 본체에 내장된 형태로 변경되었습니다. ↩︎
- 전자블록 프로젝트 컴파일러 기준
S-ANT블록이 이에 해당합니다. ↩︎ - EX-150 기준이며, 하위 제품은 추가 파츠를 구입해 업그레이드할 수 있습니다. ↩︎
- ST-100 기준입니다. ST-155는 블록 스테이지가 11×6+2×2지만 개념이 다른 제품이라 제외하였습니다. ↩︎
- EX-181과 EX-FM을 모두 포함한 개수입니다. ↩︎
- 다이애나를 너무 키워보고 싶어서 PRAGMATA는 꼭 해 보고 싶지만 하드웨어가 없네요. 잘 할 자신도 없고. ↩︎
One thought on “전자블록 EX 시리즈 (電子ブロックEXシリー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