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과 디음 글에서는 전자블록의 역사 흐름을 1990년 이전 그리고 1990년 이후로 나누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글은 기본적으로 전자블록연구박물관(電子ブロック研究博物館)의 관장인 YUKIKAZE님의 ‘전자블록이란(電子ブロックとは)‘ 이라는 글을 기반으로 그 동안 모았던 사료들을 통해 알게 된 사실들을 추가로 작성한 것이다.

모카와 전자블록
모카와 전자블록

전자블록(電子ブロック)은 트랜지스터, 저항, 콘덴서와 같은 전자 부품 소자를 넝은 플라스틱 블록을 배열하여 라디오, 앰프, 발진기 등 다양한 전자 회로를 실험할 수 있도록 한 시스템을 일컫는다. 각각의 블록은 측면 또는 하부에 있는 금속 접점 패널과 내부 부품 소자의 단자를 연결하고 있으며, 윗면에는 전자 회로 기호가 새겨져 있는 규격화된 전자 부품이다. 접점 패널을 서로 맞닿게 하여 블록끼리 전기적으로 연결하기 때문에 남땜이 필요하지 않으며 누구나 짧은 시간 안에 전자 회로를 구성할 수 있다. 또한 블록의 배열을 바꾸어 다른 회로를 실험하는 것도 매우 쉽다.

전자블록을 고안한 것은 전자공학 연구자도 완구 제조업자도 아닌 나고야 교통과 소속 경찰관이었던 노지리 타카시(野尻孝)씨였다.

1960년경, 노지리 씨는 과속 단속용 속도 측정기의 개량을 하고 있었다. 전자 회로에 대한 전문 지식은 없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과학 실험에 강한 흥미를 가지고 있었던 노지리씨는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부품을 교환하며 성능을 향상시켜 나갔다. 그러나 납땜을 반복하는 작업은 매우 번거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자유롭게 회로를 바꿀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하던 중에 아이들이 블록을 쌓으며 노는 모습을 보고 블록 안에 전자 부품을 넣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어린 시절 유기화합물의 화학 구조식을 공부했던 경험도 힌트가 되었다. 유기화합물은 탄소를 중심으로 여러 원소가 결합하면서 성질이 달라진다. 이를 전자 회로에 적용해 탄소를 트랜지스터로 다른 원소를 저항이나 콘덴서로 생각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블록 완구에 시중에 판매 중인 라디오를 분해한 전자 부품을 넣어 금속판 접점을 부착한 시제품의 제작에 착수했다. 시제품의 실험은 멋지게 성공해서 전원을 넣자마자 라디오 소리가 흘러나왔다고 한다.

노지리 씨는 도카이 발명 연구회(東海発明研究会)의 이사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특허에 대해서도 여러 조사를 하고 있었다. 당시는 트랜지스터가 처음으로 등장한 시기였기에 트랜지스터 관련 특허의 수가 아직 많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 같다. 그래서 전자블록의 아이디어를 특허출원한 것이 1963년의 일이다. 이후 누구나 전자 회로에 친숙해지는 꿈을 아이들에게 주고 싶다는 생각에 도카이 발명 연구회의 다른 이사들과 변리사들의 협력을 얻어 전자블록 사업화 계획을 추진하게 된다.

그리고 경찰관을 그만둔 노지리 씨는 1964년 9월에 전자블록기기제조주식회사(電子ブロック機器製造株式会社)를 설립한다.

이듬해인 1965년에 특허가 정식으로 등록되었고 곧 첫 번째 제품인 DR-7을 발매하였다. 이어서 기능을 확장한 상위 기종인 DR-7 Deluxe를 발매하였디. 상아색 블록에 전자 기호가 금색으로 각인된 고급스러운 제품이었다. 이 제품들은 당시 샐러리맨 직장인의 월급에 맞먹는 고가 상품이었다. 또한 실험 내용도 전문성이 높아서 일반인에게는 문턱이 높았다. 그 결과 판매에 고전할 수 밖에 없었고 생각한 것만큼 매출도 늘지 않았다.

DR-7 Deluxe
DR-7 Deluxe

그래서 기능을 줄이고 초보자도 이해하기 쉽도록 구성하여 가격을 크게 낮춘 DR-IA와 DR-IIA를 발매하였다. 이 제품들은 점차 어린이들의 인기를 얻었고 양산 체계도 갖춰지면서 주로 간사이 지방을 중심으로 판매량이 증가했다.

DR-1A/DR-IIA
DR-1A/DR-IIA

1968년에는 새로운 시리즈인 SR-1ASR-2A가 발표되었다. 기존 DR 시리즈와 병행 판매되었으며 전자블록의 자매품으로서 ‘전자보드(電子ボード)’라는 이름 붙여졌다. DR-IA와 DR-IIA의 기능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블록 내부은 납땜을 최대한 없애고 배선에는 판금 프레스 가공된 리드판을 사용하는 등의 원가 절감을 추진하여 더 매력적인 가격이 되었다. 투명한 블록으로 외관도 아름다워져 더욱 더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SR1A/2A
SR1A/2A

1969년에는 상위 기종인 SR-3A, SR-3A Deluxe, SR-4A Deluxe가 잇달아 출시되어 실험 내용이 확장되고 충실해졌다. 하위 기종에서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준비되어 어린이들에게 있어서는 구입 기회가 늘어나게 되었다.

SR-3A Deluxe/4A Deluxe
SR-3A Deluxe/4A Deluxe

1970년에는 DR 시리즈 최종 제품인 DR-4A IC Deluxe가 발매되었다. 이 제품은 당시 주목받기 시작했던 집적회로(IC)를 채용한 제품이었다. 이와 같이 전자블록의 역사는 당시 전자 기술의 발전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었다.

DR-4A IC Deluxe
DR-4A IC Deluxe

1971년 DR 시리즈와 SR 시리즈를 개량한 ST 시리즈가 발표되었다. 블록 간의 전기적인 접촉이 더욱 확실해졌고 블록의 탈착이 더욱 쉬워졌으며 추가로 앰프 유닛의 채용으로 회로 조립이 간단해졌다. DR 시리즈는 ST 시리즈로 대체되었지만 SR 시리즈는 계속해서 함께 판매되었다. 이 ST 시리즈에서 전자블록 시스템은 사실상 완성 단계에 도달했으며, 이후 시리즈에서는 이 기본 형식을 계승하게 된다. 1972년에는 ST 시리즈가 과학기술청장관상(科学技術庁長官賞)을 수상했다.

STシリーズ
STシリーズ

당시 전자블록의 라이벌 제품으로는 갓켄(学研)의 마이키트(マイキット)가 있다. 마이키트는 패널 위에 전자 부품 소자가 고정되어 있고, 소자의 단자에는 코일 스프링이 달려 있어, 코일 스프링에 리드선을 끼워 소자 간에 접속해 회로를 구성해 간다는 형식의 제품이었다. 자유롭게 전자 회로를 구성할 수 있다는 점은 전자블록과 동일한 개념이었다.

갓켄은 100만부의 발행 부수를 자랑하는 동사의 각 학년별 잡지인 ‘갓켄의 과학(学研の科学)’과 ‘갓켄의 학습(学研の学習)’ 지면의 광고와 전국 규모의 유통망으로 마이키트의 매상을 올려갔다. 반면 전자블록 진영은 전국에 전개할 수 있는 실제적인 유통망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광고 매체의 덕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간사이 이외의 지역에서는 매상이 늘지 않아 고민이라는 사정이 있었다.

여기서 전자블록 진영은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해내게 된다. 무려 경쟁 상대였던 갓켄에 대해 업무 제휴를 제안한 것이다. 전자 완구 시장의 점유율을 늘리려 생각했던 갓켄에게도 좋은 기회였기에 이 제안을 받아들여 마이키트와 함께 전자블록을 취급하기로 결정했던 것이었다.

1973년 1월, 전자블록기기제조주식회사와 갓켄 사이에 업무 제휴가 체결되어, SR 시리즈와 ST 시리즈가 갓켄 전자블록으로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쉽게 말하면 갓켄에 OEM 공급을 하게 된 것이다. 패키지 디자인이 갓켄 브랜드로서 새롭게 변경되었고, 실험 내용도 일부 수정되었다. 갓켄의 유통망에 의해 전자블록의 매상은 크게 증가했다. 1973년 후반에는 ST 시리즈의 상위 기종으로서 ST-125와 ST-155가 발매되었다. 갓켄 브랜드가 된 이후로 신제품은 이것이 최초였다.

電子ブロックST-155
電子ブロックST-155

양사의 제휴 이후에는 제품 개발 기획 단계부터 갓켄이 참여하게 되었다.

1976년에 풀 모델 체인지 후계 제품으로서 EX 시리즈가 발표되었다. 이것은 갓켄 측의 제안으로 당시 유행하고 있던 남성적이고 단단한 디자인의 라디오 카세트 스타일로 디자인되어 블랙 컬러를 기조로 한 본체와 모스그린(Moss Green) 컬러의 블록이 대비되어 기계적인 느낌을 강조한 것이 좋은 인상을 주었다. 또한 조작성과 기능성도 향상되었으며 실험 내용도 이론보다는 놀이 요소가 있는 것들로 재미를 우선시했다. 제품 라인업은 세세한 등급이 설정되어 예산에 맞추어 구입하기 쉽게 했다. 물론 그레이드 업 파츠도 준비되어 상위 기종으로 발전시키는 즐거움도 유지되었다.

이처럼 전자블록의 집대성이 된 EX 시리즈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전자블록이라고 하면 EX 시리즈를 뜻하는 것이 되었다.

1979년에는 신디사이저 유닛을 추가한 최상위 기종인 EX-181이 발매되어 EX 시리즈 누계 판매 대수는 50만대를 넘게 된다.

EXシリーズ
EXシリーズ

1980년대에 들어 마이크로 컴퓨터의 붐이 도래했다. 이에 호응하듯이 전자블록도 새로운 시리즈가 검토되었다. 갓켄 측에서는 최첨단 기술을 반영하고 싶다는 요망이 나왔고, 검토 결과 새로운 시리즈는 주니어를 대상으로 한 마이크로 컴퓨터, 멜로디 · 시계 기능을 중심으로 하고 기본적인 라디오 회로와 신디사이저에 대해서는 당분간 EX 시리즈의 병행 판매로 대응하기로 결정되었다.

1981년에 이 결정에 따라 FX 시리즈가 발매되었다.

FXシリーズ
FXシリーズ

세상에는 8비트 마이크로 컴퓨터의 붐이 휘몰아치고 있었고, 코어 컴퓨터 팬에게 있어 FX 시리즈는 다소 부족한 제품이었다. 그래서 함께 판매된 EX 시리즈는 여전히 인기가 있었던 반면, 기능이 전문적으로 변화해 버린 FX 시리즈는 기종의 전자블록 팬에게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같은 시기에 게임 앤 워치와 같은 LSI 게임이나 패미컴이라는 새로운 전자 완구가 발매되어 인기를 끌고 있었다. 이렇게 구입하자마자 바로 놀 수 있는 신흥 세력에게 전자블록은 그 자리를 조금씩 빼앗기고 있었다.

1986년, 모든 전자블록 시리즈의 생산이 종료되어, 조용히 완구 시장에서 사라져 갔다. 그 이후 학연은 LSI 게임 등을 판매하기도 했지만 점차 과학 완구 시장에서 철수하게 된다. 반면 전자블록기기제조주식회사는 완구 모델에서 기업 및 학교용 실습 모델로 방향을 전환하고 사업을 계속 이어갔다.

여기서 전자 완구로서의 전자블록 역사는 일단 막을 내리고,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다.

참고 자료

이 글을 작성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자료를 참고했다.

  • 電子ブロック研究博物館 – 電子ブロックとは/YUKIKAZE
  • 『日曜研究家 vol.9』扶桑社(1997年8月30日発行)
  • 『子供の大科学「あの頃」遊んだふしぎ玩具、教材』串間努著/光文社文庫(1997年10月20日発行)
  • 70年代から現在までお変遷を語る『電子工作物語』工学社(2002年7月10日発行)
  • 『学研電子ブロックのひみつ』学習研究社(2002年12月4日発行)
  • 『大人の科学マガジンVol.03』学習研究社(2004年1月10日発行)
  • 『大人の科学マガジンVol.32』学習研究社(2011年12月10日発行)
  • 『昭和40年男 2013年4月号』クレタパブリッシング(2013年3月11日発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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