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문고에서 비정기적으로 간행하고 있는 IT 종사자의 이야기를 담은 작은 책인 readITzine #8 에 실린 ‘개발자의 가방 속 (What’s in my bag?)’이라는 주제로 쓴 원고를 옮겨 보았습니다.

개발자이자 사진 작가의 가방 속 구경하기

저자에 대해

  • 15년전에 스마트폰 버전의 T map을 처음 만들면서 UI/UX에 많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예쁘고 쓰기 편한 게 장땡) 서적을 10여권 집필했고, 최근에는 <디자인 패턴의 아름다움>(제이펍, 2023)을 번역했다.
  • 윤태진 아나운서님을 매주 만나 사진을 찍어드리는 낙으로 살고 있다.

개발을 시작한지 벌써 35년이 넘어가다 보니, 최근에 업데이트한 이력서가 6장이 넘는다. 개발 일만 하기에도 바쁜데 개발 말고도 하고 싶은 일은 왜 이리도 많은 건지,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은 하고 살아야 한다는 주의라 해 본 일도 참 많다. 여행도 참 많이 다니고, 만화도 그리고, 사진도 찍으러 다니고, 영상 편집도 자주 한다. 그러다 보니 오늘은 가볍게 나가야지 싶다가도 결국 가방 안에 이것저것 잔뜩 넣고 집을 나서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해 잡식성 개발자이자 취미 사진 작가는 가방에 뭘 넣고 다니는지 한 번 소개해 드려보려고 한다.

먼저 가지고 다니는 가방부터 이야기하자면, 2017년에 미국에서 구입해서 아직까지 사용하고 있는 여행 가방 전문 브랜드인 Pacsafe의 카메라 백팩으로 약간 빈티지 느낌이 나지만, 사실 여전히 새것처럼 깨끗하다. 성격 상 물건을 깨끗하게 쓰기도 하지만, 애초에 이 가방은 여행용으로 나이프조차 들어가지 않는 재질로 되어 있어서 워낙 튼튼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전부터 뭔가 수납 공간이 많은 걸 좋아하다 보니 이것저것 넣어 다니기에도 제격이다.

이어서 개발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다니는 노트북은 아쉽게도 개발자의 친구인 맥북이 아니라 여러분의 예상을 벗어난 이단아에 가까운 서피스 프로 9을 넣어 다닌다. 애초에 그다지 애플 제품을 선호하지 않기도 하지만, 83년부터 마이크로소프트에 길들여진 개발자이다 보니 크게 불편한 것은 못 느끼고 있다. 특히 지난 5월 말에 출간된 ‘디자인 패턴의 아름다움‘을 번역하면서 회사에서 짬을 내서 수정할 때는 맥북을 사용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서피스를 번갈아 가며 사용한 적이 있는데, 집필이나 번역을 많이 하고 있는 입장에서 볼 때 맥북의 환경은 그리 녹록치 않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서피스 프로 9에 딸린 액세서리로 서피스 마우스와 서피스 트래블 허브를 가지고 다닌다. 이왕이면 깔맞춤이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같은 브랜드로 통일한 것은 아니고, 같은 회사의 제품이어야 하드웨어 조합 시 트러블이 생기는 일이 적기 때문이다. 물론 맥북은 버전에 따라 같은 회사인 애플의 정품 액세서리도 퉤하고 뱉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리고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여도 모니터는 곧 죽어도 두 개를 사용해야 하는 개발자이기에 휴대용 모니터를 하나 더 가지고 다니는데, 제대로 된 썬더볼트(thunderbolt) 3나 4 버전의 케이블을 연결하면 추가 전원 공급 없이도 4K 60Hz 출력이 가능한 11인치 중소기업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듀얼 모니터는 개발할 때도 물론 필수지만, 사진이나 영상 편집에도 유용할 뿐만 아니라, 특히 번역 작업을 할 때는 한 쪽에 원서를 띄우고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듀얼 모니터의 사용은 필수에 가깝다.

그리고 개발자라면 키보드에도 신경을 많이 쓰기 마련인데, 가방에 여유가 있는 날에는 개발자용 기계식 키보드인 해피 해킹 키보드 하이브리드 타입 S 스노우를 챙긴다. 이 키보드는 기계식 키보드이긴 하지만 타건감을 유지한 채 소음만 줄인 버전이어서 밖에서 사용하기에도 부담이 적다. 거기다 블루투스와 USB를 모두 사용할 수 있어서 선을 주렁주렁 연결하지 않아도 되는 점도 매우 매력적이다. 물론 텐 키(10 key)는 고사하고 기능 키와 방향 키도 없기 때문에 처음에 문서 작업을 할 때는 살짝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익숙해지고 나면 같은 감각으로 사용할 수 있어 지금은 아무런 문제 없이 사용하고 있다.

외부에서 일을 하다 보면 인터넷 연결을 고심해야 할 때가 있다. 물론 공개된 무선 인터넷(Public Wi-Fi)을 쓸 수도 있겠지만, 해킹이나 스니핑의 위험이 있기도 해서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 스마트폰의 모바일 핫스팟(mobile hotspot) 기능을 사용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배터리 소모나 발열 문제도 있고, 여러 사람이 인터넷을 사용해야 할 때는 스마트폰을 들고 이동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5G 신호를 받아 무선 인터넷 신호로 발신해 주는 무선 라우터를 별도로 사용하고 있다. 이전에는 ZMI의 MF885라는 4G 라우터를 사용했으나, 지금은 삼성의 갤럭시 5G 라우터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데, 아이로니컬하게도 이 제품은 국내가 아닌 일본에서 발매된 제품이다. 인터넷 환경이 잘 갖춰져 있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일본에는 집에 PC가 없는 경우가 많고, 광대역 인터넷 망이 설치되어 있는 가구 역시 2021년 말 기준 35%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이런 무선 라우터 시장이 꽤 발달되어 있다.

그리고 개발이나 번역과 같이 집중해야 하는 일을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음악이다. 집에서 음악을 들을 때는 이런저런 오디오 장비에 고급 헤드폰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가방에 항상 넣어 다니는 것은 소니의 노이즈 캔슬링 블루투스 헤드폰 한정판 하나뿐이다. 굳이 소니 제품을 고집하는 이유는 노이즈 캔슬링 기술에 있어서는 거의 독보적이기 때문인데, 생각해 보면 나는 시끄러운 게 싫다고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쓰면서 남들에게는 소음일 수도 있는 기계식 키보드를 쓰고 있으니 망나니도 이런 망나니가 없다.

이렇게 여러 가지 전자 제품을 가지고 나가다 보니 여러 가지 충전 케이블을 모아서 파우치에 담아 가지고 다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들어 케이블이 USB-C 타입으로 통일되고 있어서 여러 종류의 케이블을 주렁주렁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되어서 편해졌다. 그리고 충전을 위한 AC 어댑터를 여러 개 가지고 다니는 대신 160W 용량의 멀티 어댑터를 하나 챙기는데 여러 개의 제품을 연결해도 초고속 충전이 가능하기에 유용하다. 그리고 요즘 카공족이라고 해서 카페에서 멀티탭까지 사용해 가며 전원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논란이 되고 있는데, 부끄럽지만 굳이 카페가 아니더라도 콘센트 소켓이 부족한 경우가 있어 작은 3구짜리 파워 스트립을 가지고 다닌다.

몇 년 간은 최근 골 때리는 그녀들에 출연 중이신 윤태진 아나운서님을 매주 짧은 시간이나마 만나서 고우신 모습을 렌즈에 담아 드리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가방에 항상 카메라를 넣어 다닌다. 사진 촬영을 위해 특별한 장소로 나가는 것을 흔히 출사(出寫)라고 해서 이런저런 사진 장비를 잔뜩 챙겨 나가기도 하지만, 평소에는 단출하게 렌즈 하나만 장착해서 나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용하고 있는 카메라는 역시 소니의 α1이고 여기에 50mm F/1.2 렌즈를 장착해서 사용하고 있다. 낮 시간에 만날 약속이 되어 있으면 이것으로 끝이지만, 밤 늦게 만나게 되는 경우에는 여기에 작은 LED 조명을 추가로 가지고 나가기도 한다.

그리고 외부에서 사진과 영상을 편집할 때 사용하기 위한 추가적인 보조 도구로서 Loupedeck CT도 카메라와 함께 가지고 다닌다. 물론 마우스와 키보드만으로 편집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노브(knob)를 돌려 미세한 조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특히 외부에 기고할 사진을 현장에서 바로 작업해서 보여줄 때는 필수적인 도구이다.

물 티슈와 손 소독 티슈도 항시 소지하고 다니는 물품이다. 있어도 아예 꺼내지 않는 날도 많지만, 그렇다고 없으면 또 매우 아쉬우니까. 이 외에도 가끔 먹는 약과 상처용 밴드 같은 것들도 항상 소지하고 다닌다. 그리고 지금은 폭염에 시달리는 여름이다 보니 여기에 더해 데오드란트와 향수를 추가로 가지고 다닌다.

요즘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다니는 분들이 많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병원에 방문할 때는 여전히 마스크를 반드시 써야 하기 때문에 마스크를 보관하는 전용 파우치와 마스크용 팬인 airclip도 가지고 다닌다. 특히 안경을 쓰는 사람들에게 마스크용 팬은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뭐 이런 것까지 들고 다니나 싶은 물건을 하나 소개하려고 하는데, 바로 A4 사이즈를 출력할 수 있는 휴대용 잉크젯 프린터이다. 캐논의 PIXMA TR150이라는 제품으로서 배터리 또는 AC 어댑터로 전원 공급이 가능해서 이동 중에도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이 매우 큰 장점이다. 항상 들고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출력을 해서 타인에게 전달해야 하는 일들이 곧잘 생기곤 하는데, 이럴 때마다 PC방을 찾아 헤매거나 호텔의 비즈니스 센터를 방문했었다. 문제는 대부분의 경우 노트북에 직접 프린터를 연결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출력에 필요한 소프트웨어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난처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가지고 다니게 된 것이 바로 이 휴대용 프린터이다. 무게도 2kg 정도에 불과해서 필요할 때 들고 나가기에 큰 부담이 없다.

이렇게 그리 일반적이지는 않은 개발자의 가방에 담긴 물건들을 간단하게 소개해 보았다. 사실 YouTube에서 What is in my bag? 이라고 검색해 보면 직업군에 따라 그리고 하는 일이나 연령에 따라 매우 다양한 물건들을 가지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연히 readITzine #8 에서 가방 속 물건을 보여 주는 주제로 이야기를 모집하기에 가방에 있는 물건을 하나씩 꺼내서 이야기를 펼쳐 보았다. 사실 하나씩 꺼내면서 참 많이도 넣어 놨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이 물건들이 항상 필요한 삶을 살고 있다는 건 열심히 살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하고 자신을 다독이면서 글을 마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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