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음질 음악 감상에 대한 짧은 생각

사실 고음질 음악 감상 영역에서 필수인 고음질 음원이라는 개념도 아날로그 음원에서 디지털 음원으로 넘어오면서부터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그 역사가 매우 짧다. 애초에 CD가 처음 등장한 것이 1982년이고, MP3는 그 보다도 15년 후인 1997년에 등장했으니.

고음질 음악 감상에 대해 이야기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음원 형식에 대해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MP3 파일을 인코딩할 때 같은 음원일 경우, 256kbps 이상의 비트레이트로 인코딩하게 되면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애초에 MP3가 원본 음원을 압축할 때 사용하는 원리 중 하나가 가청 영역인 2Hz~20kHz 바깥의 데이터를 잘라내는 것이다. 사람의 청신경은 어차피 이 영역 바깥의 소리를 들을 수 없으며, 그마저도 나이가 들수록 고음 영역의 가청 범위가 확연하게 줄어든다. (중년이 되면 16kHz 정도가 한계라고 한다.) 청신경은 한 번 손상되면 회복되지 않으며, 소리를 듣는다는 행위 자체가 청신경을 소모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음악을 자주 듣는다면 오히려 못 듣는 소리가 늘어나는 아이러니함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럼 왜 굳이 FLAC이라는 무손실 음원이 등장하고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일까? FLAC으로 들으면 더 나은 소리를 들려준다고 느끼는 것은 단순한 플라시보 효과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우리가 만약 1차 인코딩된 MP3 음원을 멜론이나 벅스와 같은 음원 사이트에서 제공받아서 파일 자체를 전혀 건드리지 않고 사용할 수 있다면 사실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기의 성능 한계가 존재하는 경우, 모든 파일을 원본 상태 그대로 재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그 파일을 임의대로 변환하거나 재인코딩하는 경우도 매우 많다. iTunes도 기본값은 AAC로 무조건 인코딩하는 것이었고, 모바일 메신저로 MP3 파일을 전송하는 경우 설정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는 하지만 Kakaotalk이나 LINE 모두 재인코딩을 해서 비트레이트를 낮추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때 2차 인코딩은 원본 음원이 아닌 이미 한 번 손실 압축된 파일에서 인코딩을 하기 때문에 음원이 손상될 수 밖에 없다. 이는 MP3 형식이 손실 압축 형식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다시 말해 MP3 형식은 디코딩했을 때 원본과 동일한 음원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FLAC 파일을 원본으로 보관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내가 음원을 들을 때는 당연히 FLAC으로 들으면 되겠지만, 남에게 해당 음원을 전달해야 할 때는 인코딩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럴 때 MP3나 AAC로 인코딩하면 어떻게 될까? FLAC을 원본으로 인코딩하는 한 동일한 음질의 파일을 보장받을 수 있다.

따라서 내가 어떤 음악의 음원을 입수한다고 했을 때, 가급적이면 FLAC 24비트, FLAC 16비트, MP3 320kbps 순서로 입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물론 세 음원은 일정 수준 이상의 동일한 재생 시스템을 사용한다고 가정하면 들려주는 소리는 다르겠지만, 내 청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되는 음악은 거의 같은 결과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파일의 이후 전달이나 청신경을 소모하지 않는 더 나은 청음 시스템이 갖춰진다고 하면 MP3 320kbps보다는 FLAC 16비트가 추후 더 나은 소리를 보장해 줄 것이고, FLAC 16비트 보다는 FLAC 24비트가 더 나은 소리를 보장해 줄 것이다. 물론 그 때가 오면 우리가 MP3나 FLAC으로 언쟁하는 것이 무의미한 완전히 새로운 음원 형식이 등장할 수도 있겠지만, 해당 음원 형식을 만나게 되는 시점에도 디지털 음원이라면 인코딩은 필수 불가결할 것이라 확신한다.

ESS ES9038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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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음원이 아무리 디지털이라도 우리가 청신경을 소모해 가며 듣는 소리는 아날로그이다. 다시 말해 디지털을 아날로그 신호로 바꿔 주는 장치, 즉 DAC(Digital-Analog Converter)와 그 아날로그 신호를 증폭시켜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가청 주파수로 끌어올려주는 OpAmp(Operational Amplifier)의 품질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DAC와 OpAmp는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점점 더 소형화되고 가격도 저렴해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DAC와 OpAmp가 같은 성능을 내는 것은 절대 아니다. 고성능의 비싼 앰프를 사용할 수록 더 높은 임피던스를 제공하고, 노이즈가 적을 뿐 아니라, 음색이 전 영역에서 고루 안정적이다. 물론 이 중에서 음색은 단순히 좋다 나쁘다로 판단할 수 없는 개인적인 영역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저음이나 고음 영역이 뭉개지거나, 하이햇(Hi-Hat)이 안 들리는 앰프를 단순히 다른 음색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인해 MP3 플레이어와 같은 전용 재생기 시장이 급격히 몰락하는 와중에도 Sony 등에서 몇 십만원 또는 몇 백 만원이나 하는 고음질 플레이어 시장은 매년 70% 이상 성장하고, DAC 앰프 시장이 날로 커지고 있는 것은 바로 고음질 음악 감상 영역에서 이러한 하드웨어가 가지는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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