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포스팅은 40대 이상이어야 경험해 본 것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바로 지금은 아예 그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 휴대용 CD 플레이어에 대한 이야기이다.

커다랗고 폭신한 밸런스드 헤드폰을 뒤집어 쓰고, 디지털 앰프를 통해 음악을 듣는 것이 내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몇 안 되는 방법이다. 그런데 지난 달 말 즈음에 이렇게 음악을 듣다 말고 갑자기 20년 전에는 음악을 어떻게 들었더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갑자기 휴대용 CD 플레이어에 꽃혀 버렸다.

휴대용 CD 플레이어는 MP3 플레이어와 아이팟, 스마트폰 등의 출현으로 인해 생산이 중단된지 벌써 20여 년이 되어 가고 있었다. MD도 생산이 중단된 판에 CD가 살아 남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이상한 것이겠지만, 정말 사라졌을 줄은 몰랐다. 물론 아주 소수의 중국제와 그것을 수입해서 판매하는 학습용 제품이 있긴 한데, 그건 생긴 것만 휴대용이지 들어 올리는 순간 CD가 미친듯이 튄다고 한다.

어찌되었든, 한 번 꽃힌 것은 어떻게든 방법을 찾는 사람이다 보니 일본 중고 마켓을 싹 뒤져서 Sony D-E999 중에 그나마 깨끗한 제품을 하나 구해왔다. 당연하게도 배터리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항공 배송이 불가능해서 보통 3일이면 가능한 국제 배송이 3주가 걸린 것은 덤이다.

솔직히 CD 플레이어 자체야 손에 넣었다 쳐도 CD 자체를 구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고, 스트리밍 사이트에 MP3, FLAC을 곡 당 몇 백원에서 2천원 정도면 구할 수 있는데 뭐하러 그걸 애써서 구했나 싶은 분들이 계실 것이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가 그래도 얼마 전까지 편의점에서 볼 수 있었던 Blank CD-R, DVD-R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USB 스틱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방금 확인하고 돌아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직도 시작을 못했네…) 조금 다른 이야기이다. CD는 레이저를 통해 미세한 표면을 읽는 매체의 특성 상 플레이어가 요동치면 재생이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휴대용 CD 플레이어는 등장 기간이 매우 짧았음에도 그 발전 속도가 놀라웠다. 예를 들면 소니의 경우 G-Protection이라는 기술을 통해 CD를 안정적으로 읽을 수 있을 때 미리 데이터를 읽어 버퍼에 저장해 두고 재생하는 방식을 채택했고, Panasonic도 이러한 재생 기술로는 최고를 달렸었다. CD라는 매체가 가지고 있는 제약을 뛰어 넘기 위한 수많은 노력이 단기간에 구체화되고 그것이 상품화될 수 있었던 시기였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에 MP3 플레이어와 PMP가 나오고 다시 아이팟이 등장하면서 이번에는 작은 하드 디스크를 어떻게 하면 이동 중에 오류 없이 읽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던 시기가 있었다. 당시 CF Type II 규격의 하드 디스크인 IBM의 Microdrive가 340MB라는 용량으로 출시되었고, 나는 아직도 Seagate Technology의 1GB 짜리 1인치 하드 디스크를 가지고 있는데, 당시에는 1인치라는 작은 공간에 디스크를 쌓고 플래터와 헤드를 띄워서 저전력으로 돌려 데이터를 읽는 것이 혁신이었다.

지금은 메모리 반도체의 발전으로 SSD는 물론이고, 지금 책상 서랍에 400GB 크기의 Micro SD 카드가 굴러다니고 있지만, 예전에 CD 플레이어와 손바닥 보다도 훨씬 작은 하드 디스크에서 느꼈던 경외감을 이제 더 이상 쉽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너무 아쉽다. 아이폰이 처음 등장한 이후 매년 신제품이 나오고 있지만, 과연 처음 등장했을 때의 경외감과 행복을 지금 새 아이폰 출시와 함께 느끼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고 말이다.

이제 기술의 발전은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 그리고 AI로 넘어가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정말 놀라운 하드웨어의 개념이 다시 짜잔하고 등장해서 내 가슴을 뛰게 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 이미 내가 꼰대이기 때문은 아닐까 살짝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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